080310 l 유럽의 한국인 민박

March 9, 2008

E. 27세 여성. 10일간의 휴가중이며, 런던에는 전날 도착하였다. 다음 날 파리에 갔다가 다시 런던으로돌아올 예정이다. 후드를 입은 가벼운 트레이닝복, ('추리닝'이 아닌) 차림이다.

"여기 처음 왔을 때, 좀 무서웠어요."
"네? 왜요?"
"여기 동네. 런던 안 같잖아요. 아랍애들만 많고. 신경쓰이더라구요."
"아-"
"해질 때 쯤에 여기 왔거든요. 공항에서 바로. 오늘 센트럴 나가고 하니까, 이제 좀 런던 온 것 같더라고요."
"여전히 기분 별로에요?"
"뭐, 좀 괜찮아졌는데, 그렇잖아요. 꺼림칙한 기분 드는 거, 왜 걷다보면 누가 막 나 쳐다보고 있는 것 같고 그런 기분 있잖아요. 그냥 그렇더라구요. 뭔가 마음이 안 놓이고"

E는 런던에 처음이다. '해외여행은 처음이거든요.' 어째서 그러한 느낌이 드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완전히 '어색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는 말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해와 긍정은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00.

학교 숙제로 'Ethnography' 라는걸 흉내내고 있는데, 주제 선정과정에서 문득 떠오른 것이 '런던의 한국 민박'이었습니다.

01.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지만, 유럽은 한국인 민박이 꽤나 활성화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경위로 친하게 지내던 민박집 스태프 한 분께서 하시는 말로는, 여름 방학때는 거의 가득 차는 일이 다반사라고 하더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유럽의 한국인 민박들의 대다수는 '불법'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되레 가격은 현지 숙박 업소보다는 조금 비싼 편이죠. 런던의 경우 제가 알기로는 18파운드가 아침을 제공하고 20파운드를 내면 아침과 저녁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일반 호스텔 도미토리가 10파운드에서 15파운드 가량의 숙박료를 받고 있다는 것과 비교하면 분명히 비싼 가격입니다. 그렇다고 민박들이 '초 중심가'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요. 대다수의 민박이 불법으로 영업이 되고 있는 관계로 동네는 반드시 '조용하고', '그리 눈에 띄지 않는', '남들은 신경쓰지 않는 이웃들이 사는' 곳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조금만 시끄러워도 경찰에 신고하는 영국인 할머님들과 이웃이어서는 곤란하기에, 조금 변두리에 위치들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나치게 변두리면 관광지랑 멀어지니까, 어느정도 절충안을 찾더군요.)

결국 언어적인 문제가 아마도 이런저런 점들에도 불구하고 민박이 잘되는 이유인 듯 싶습니다.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여행자들끼리 편하게 지낼 수 있다.' '분위기가 좋다.' 이런 선택의 이유들은 사실 영국 숙박업소나 민박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그 시점에, 어떤 사람들이 투숙하고, 한 방을 쓰고 있느냐의 문제죠.) 조금 더 넓게 보자면, 문화적인 차이의 문제들도 있는 것도 같고요. 간혹, 인터넷에 '옆 침대에 옷을 벗고 자는 유럽애가 있어서 놀랬다.' 라는 식의 후기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대체로 기본적인 의상만 입고 자는 몇몇 '유럽애'들 - 대체로는 유럽보다는 아마 호주쪽 애들이 아닐까 싶은데 - 이런건 단순히 영어의 문제라고 볼 순 없으니까요.

민박을 이용하는 것이 옳다 그르다 라고 말을 하기 전에, 우선, 저는 이런 것들이 굉장히 '한국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한 국적의 여행객들'을 위해 특성화된 숙소가 있다는 이야기는, '일본인들'을 제외하고는 찾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즉 여행지의 숙소는 '일반 숙소' '한국인 민박' '일본인 숙소' 이렇게 3곳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이유는 아마 '한국인 배낭 여행객들이' 배타성이 강하다고도 또는 쑥쓰러움이 많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에 살던 집에 같이 살던 멕시코에서 온 친구가 자신이 파리에서 6개월간 있었을 때 같은 집에 살던 한국인 여학생이 있었는데, 3개월간 살면서 '안녕' '미안' 이 말 밖에 들어본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아마 부끄러워서 그랬을 꺼야. 많이들 부끄러워 해.' 하니까, '내가 뭘 어쨌다고 부끄러워해?'라고 되묻던데, 설명하기 난감했습니다. '그냥, 부끄러워들 해.'라고 이해시키기까지 말이죠.

02.

민박이 재밌는 것은, 많은 수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이 처절히 깨지는 입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옵니다. 대다수의 유럽 여행을 꿈꿔오셨던 분들께서 가지는 '유럽'이라는 공간에 대한 환상은 대체로 '영화속의 그것'이죠. 민박은 그러한 '환상적이 공간'과는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거든요. (가령 위의 사례처럼 파키스탄 동네 한복판이라서 집 나오면 바로 모스크가 보인다던가 말이죠.) 처절히 깨져버리는 환상 - 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제 숙제 안에도 꽤 등장합니다. '여긴 런던 안 같아요.' 라던가 등등..

하지만, 사실 어느정도는 알고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유럽 여행을 와서 '한국인 민박'에 투숙한다는 건, '런던'에서 잠을 자고자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데요. 한다리씩 걸치고 있는 듯 하다는 느낌이랄까? 결국 '지나친 부끄러움'으로 스스로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버리고, 그 벽 때문에 보이지 않는 다른 것들에 대해 투덜거린다. 좀 과장해 말하면 이 정도겠죠. 여행지가 '집'이 아님을, '한국'이 아님을, '익숙한 곳'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죠.

그저 단순한 배타성이라면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것일테고, 부끄러움이 낳은 배타성이라면 왠지 모르게 안타까운 일일 듯 합니다.

03.

결국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요?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환상을 '확인'하러 가는 것? 민박집이 '런던 같지 않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분명히 미리 준비하신 '런던'에 대한 이미지가 현재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곳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시는 것 일텐데 - 사실 대다수의 런던은 그저 그런 곳들이고, 런더너들은 백인 보다는 유색인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랍애들' '깜둥이'들이라봐야 (실제로 모두 대화중 쓰여졌던 단어들입니다.) 마치 우리가 대한민국 국적인 것처럼, 당연히 영국 시민들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쉽사리 느껴지가 않는 듯 하더라고요. 눈으로는 보지만, 믿지는 않는 분위기랄까. 몇몇 대화 중 '영국애들'이랑 '흑인들'을 따로 구분하는, 예를 들면, '어제 길을 가다 영국애들을 봤는데...근데 저쪽에서 흑인들이 또 막 오는거야..' 이런 식으로.

하지만, 여행은, 그래도 뭔가 새롭고, 전혀 전에는 경험해 보지 않았던 그런 것을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조금은 '불편한'게 당연해야, 조금은 '새로운'게 얻어지겠죠. '런던 속의 아랍'이면 되레 더 재밌는 일 아닌가요? 적어도 뻔한 영화로는 찾기 힘든 곳이니까 말이죠. 조금 더 용기를 - 여행은 어떻게든 굴러가게 되어있고, 그렇게 정신없이 구르는 여행이 정말 기억에 남는게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