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119 l 책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하는 말들
November 18, 2008
책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고, 그건 어떤 점에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흉내 내어서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서 말하는 우리는 어떤 순간에 이르러 우리 자신이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지상에서 약 30센티미터 정도 떠 있게 된다. 열에 들떠서 친구에게감동했던 구절에 대해서 떠들어댈 때, 대개 그렇다. 순간이나마 우리는 우리의 어휘가 아닌 다른 어휘로 우리의 삶에 대해서 말하기시작한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동안, 모든 순수한 행위가 그렇듯 독서는 우리를 우리가 알던 세상 바깥으로 밀어낸다.절대로 독서를 권장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추천도서 목록을 작성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계발하려고 책을 읽어서는안 된다. 책을 읽는 일은 그냥 무의미하고 무용한 일일 뿐이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할 수 있는 많은 일 중의 하나일 뿐이다.그 일을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책에 대해서 말하는 일 뿐이다. 책 속에는 길이 없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한번도 예상하지 못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열망만으로 삶이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납득한다면, 책 속에는길이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 속에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우리는 진정한 독서가가 된다.그러니까 오직 책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처럼 책을 읽는 사람이 된다. 그 때, 우리는 우리가 한 번도 말해보지 못한것들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 최근 가장 공들여 읽은 책은 바디우의 짧은 철학 에세이이다. '윤리학' 윤리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정의'와 '윤리'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새로운 지평을 위한 화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암울한 시대상의 모색이다. 그리고 이번주 가장 많은 시간을 붙잡는 종이쪼가리는 '모질게 Economy RC/LC 1000제' 이다. 쓴웃음을 던진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이런걸 공부해야 하는 내 처지에, 그리고 책을 덮기 전에는, 좀 전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틀린 문제의 숫자만큼 구겨지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비슷한 표정이 '후기 식민주의'를 공부한 친구가 보낸 짧은 메일에도 적혀있다. 'I'm going to start working for Ernst & Young as a tax accountant, probably as the only one postcolonial tax accountant in the world, next month. (...) Honestly speaking, I don't want to go back to work. (...) But it's time I faced the reality.' 빌어먹을 리얼리티. 빌어먹을 리얼리티.
억울한 마음에 작가의 소설을 한 권 샀다.
그 입체 누드사진은 현실보다도 더 생생환 환상을 그에게 보여줬을 거라면서, 나는 고립된 사람들에게 현실이 한순간 뒤흔들리면서그보다 더 생생한 환상이 나타나는 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떠들어댔다. 제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현실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만드러나는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감각이 바뀌면서 현실이 무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마련인데, 이를 두고십자가의 성 요한은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이라고 불렀다. 모든 성인들은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해 그 '존재의 가장 어두운밤'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현실이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다. 하지만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경험한 그 다음 순간, 모든 성인들은 감각적 현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이 감각적으로만 성립된다는 것을깨닫게 되면 모든 게 덧없을 뿐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져야 할 텐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더욱더 그 감각적인 생생함을 즐기게 되니놀라운 일이다.-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p. 42.
작가는 환상이 이따금 현실을 눌러버리는 일이, '경이'가 '논리'를 압도하는 사건들이 놀랍다고 말한다. 나와 Masashi의 '리얼리티'는 논리로 이루어진 세상일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은 '어른이 된다'는 말과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그건 경이를 위한 추운 겨울과도 같고, 어른이 된다는 말은 반대로 겨울을 견디지 못해 동굴에서 뛰어나가버린 호랑이가 스스로를 바라보며 뇌까릴 말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담 '감각적 현실'이 언젠가 '리얼리티'에서 뿜어져나올 것임을 믿어보면 어제부터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좀 더 눈부셔 보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빌어먹을 리얼리티. 빌어먹을 리얼리티. 욕만 하는 나로서는 바랄뿐이다. 믿음은 무언가를 바람이며,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예측될 수 없는 어떠한 새로운 사건의 도래일 것이다. 그러나 형편없는 자기개발서인 토익(책)을 덮은 뒤에도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는 나로썬, 그저 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