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228 l 연말
December 28, 2008
<허삼관 매혈기>로 유명한 중국 소설가 위화는 연말이 되면 지난 일 년 동안 무슨 일을 했나 펜을 들고 차분하게생각하며 종이에 기록해본다고 한다.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했고, 열세 번째 작품을 냈고, 사진기를 하나 샀고, 또 그것 말고도아주 많은… 또….”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종이에 적은 것들은 다 일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어서, “그럼 내가 인간으로서 올한 해를 어떻게 보냈지? ‘나의 마음은 뭘 얻었지’ 하는 데 생각이 미치는 순간 금세 침울해진다”는 것이다. 올해의 삶은 지난해삶의 복습이고, 지난해는 지지난해의 복습이고…. 결국 삶의 의의가 부단한 반복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면, 삶에 대한 믿음으로충만했던 사람조차 염세주의자가 되고 만다는 한 해의 마지막. “연말연시란 이런 것이고, 한 어른이 불안을 느끼는 시기다”라고그는 결론내렸다.당신의 연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안은 불면증과 달라서 술을 마신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어서, 떠들썩한 술자리 끝에숙취처럼 밀려오는 허무까지는 어쩌지 못한다. 결국 어른들의 연말연시는 마치 곳곳에 토사물이 엉겨 붙은 아침 출근길과 같아서,웬만하면 눈 돌리지 말고 발길 재촉해 서둘러 지나쳐가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믿게 된다.
- 김세윤 (영화 에세이스트) '2008년과 멋지게 작별하게 만드는 근사한 영화', 시사인 67호
-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아이였음을 인정하는데 있다. 밤에 꾸는 꿈과 공상에 잠겨 꾸는 꿈을 구분하지 못하던,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었던 나의 어느 시절. 커서 어른이 되면,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있을 것이라 믿고 가늠할 수 없는 그 형체를 더듬어 그려보곤 했었다. 막연한 그 윤곽이 사실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자기 자신에 의한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어른이 된다. 간만에 나간 집 앞에서 나의 그즈음을 보내고 있음직한 그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운 것을 보고 내가 느낀 그 오묘한 희열, 아찔한 기분은 그들이 가진 '파릇파릇함'에 대한 관음뿐은 아니다. '어른'이라는 단어를 믿던 시간에 대한 향수가 그들에게 설핏 내비쳤기 때문이다.
어른의 낭만은 '도라지 위스키에 짙은 색소폰소리'이거나 '소녀걸스', 둘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시절의 '자신'에게 속은 스스로를 씁쓸하고 (텁텁할 것 같은) 싸구려 술로 위로하거나. 스스로의 어린시절로 다시 도망칠 뿐이다. 엊그제, 친구와 나는 밤을 새서 '삼국무쌍 5'의 스틱을 잡았고, 오늘은 조금의 술. 이렇게 향수라는 단어가 가지는 편안함과 상실감의 외줄을 걸으면서 나의 연말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