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222 l 시선

February 22, 2009

한 사람이 어떤 공간안에 서 있다는 것은, 그 공간안에 있는 사람의 숫자만큼의 마법의 거울들 앞에 서 있는 것과 같다. 현실이 동화와 다름은 우리가 이들에게 '거울아 거울아'라고 묻지않는다는 점이다. 이 곳에선, '거울'이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건다. 다소 친절하지 않은 어투로.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하늘을 쳐다보며, 그들을 애써 피하려하는 것은 우리다. 시선에 대한 공포로 인함이다.

한 문화가 어떤 문화와 다르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선을 문화권내의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봐도 크게 억지는 아니다. 어떠한 문화에서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사적인 간격이 유지된다. 사적인 간격이 공적인 영역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라는 생각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문화에서는, 반대로, 사적인 요소은 공적인 영역을 구성하는 구조물의 하나로 여겨지기에, 끊임없이 사적인 간격은 공적인 영역의 간섭을 받는다. 민주화된, 그리고 근대화된 사회에서 더 이상 다른사람의 사적인 영역으로 호통을 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은 시선으로 이러한 일들을 처리할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타인과 나와의 거리는, 비단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툭툭 건드릴 때만 침범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느껴지는 그 시선, 그러니까오히려 고개를 들고 마주 쳐다보기만해도 이내 상대방이 회피하고 마는, 그 비겁한 시선을 통해서도 파괴받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눈은 영혼의 창'이라는 옛말은 窓이 아니라 戈이나 矛로써의 '창'이어야만 옳은 말이다. 

사적인 공간으로 헤집고 들어온 타인의 (가정된) 눈초리는 어떤 역할을 할까?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배운 물리학의 기본 법칙은 여기서도 마찬가지. 외부에서 가해진 힘은 어디로든 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어떤이는 그 무게만큼의 시선을 다른사람에게 돌린다. 어떤이는 스스로 그 중량을 감해낸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술에 취해 비틀거려야 한다는 점이 변하지는 않는다. 지하철을 탈 때, 왠지 모르게 떳떳치 못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난 죽어도 저렇게 '흥청망청' '꼭지가 돌게' '개같이' 살진 않겠어라고 말한 그 모든 아들들이 이수역 벽돌거리를 갈지자로 걷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