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531
May 31, 2009
한 때, 9시 뉴스 첫 꼭지에 (통계적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곤 하였던 그가,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작은 공원의 벤치에 적힌 "이게 다 ... 때문이다"라는 내용의 낙서에 등장하였던 그가, 비판과 질시의 대상이자 변함없는 지지와 응원의 목적이었던 그가, 마지막으로 (적어도) 수백만명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이 파문의 '사건'으로 우리에게 던져진 건 한 개의 질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가장 늦게 반응하는 인터넷 서점인 인터넷 교보문고마저도 같은 질문을 첫 화면에 올렸다. "당신에게 노무현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에게 노무현은 무엇이었습니까?" - 이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이며, 또한 과거와 현재, 그 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노무현이 살던 과거는, 역사의 과거, 예를 들면 일제시대처럼,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억이 부재된 과거가 아니다. 노무현의 과거는 불과 몇 년전으로 기억되던 그리 오래지나지 않은 과거이며, 우리 모두의 현재였었던 과거이다. 질문은, 그러하여, 현재의 당신에게 그 오래되지 않은 과거가 어떠한 색조로 머리속에 남아있지, 혹시 그와의 과거와 당신이살고 있는 현재는 불화하고 있지는 않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또한 그것은 차분한 손가락질로 바로 우리 한 명, 한 명씩을 지목하며, 당신의 현재에 노무현과의 '그 즈음'을 재구성하여 접붙인다. 그가 상징하던 오래 되지 않은 과거가,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현실과 불화한다는 점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며, 그 불화, 그 갈등의 한가운데로 당신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는가?" 라는 반응으로 추려지는 지금의 수백만갈래의 연민, 안타까움, 슬픔, 애통함, 무책임에 대한 질책등의 감정들은, 따라서, 그의 죽음으로 인해 개개인들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대답일 수 밖에 없다. 이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정말 '빈민의 편'이었는가? 그가 정말 '변절자'였는가에 대한 질문은 의미를 잃었다. 그 질문들을 뛰어넘어 노무현은 비극의 주인공 위치에 올랐고, 그가 기억되는 한,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강요받을 수 밖에 없다. 하여, 이 '질문'은 "지금, 여기" - 현실을 불편함의 공간으로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마치 방안에서 잃어버린 단 하나의 압핀처럼, 의미심장한 공포.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공간이 이러한 불온한 작은 기억 만으로도 알수없는 공포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화하듯-.
우리의 현실이 한층 더 생소하게 변했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현재는 낯설어졌다. 이제 이 낯설어진 현실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는, 당신의 몫이다. 죄책감을 망각하려 수면제를 먹다가, 이따금씩 당신의 맨살을 파고들 압핀에게 통증을 허용할 것인가- 주의깊게 바닥을 살피며 살아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