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613

June 13, 2009

에스트라공: (불안하게) 그런데 우리는?
블라디미르: 뭐라고?
에스트라공: 그런데 우린 어떻게 되는 거냐고?
블라디미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에스트라공: 그 일에서 우리의 역할은 뭐냔 말이다.
블라디미르: 우리의 역할이라니?
에스트라공: 생각을 해보라고.
블라디미르: 우리의 역할이라? 그야 탄원자의 역할이지.
에스트라공: 그 정도야?
블라디미르: 아니면? 나리께서는 내세울 만한 특권이라도 가지고 계신지요?
에스트라공: 그럼 우리에겐 아무런 권리도 없게 됐단 말이냐?

블라디미르가 웃으려고 하다가 전처럼 뚝 그친다. 같은 동작. 미소가 사라져버린다.

블라디미르: 네 그런 소릴 들으니 웃을 수만 있다면 한바탕 웃고 싶구나.
에스트라공: 우린 권리를 잃은 거냐?
블라디미르: (명료하게) 헐값으로 팔아버렸지.

침묵. 둘이 다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두 팔은 흔들거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무릎에는 맥이 빠졌다.

에스트라공: (힘없이) 우린 꽁꽁 묶여 있는 게 아닐까? (사이) 안 그래?

블라디미르: (손을 들며) 쉿! 무슨 소리가 난다!

-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 세계문학전집 43) p.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