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906
September 6, 2009
- 오랜만에 한의원에 들렀다. 차트를 쓱 훝어본 의사는 마치 3년전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그래, 약을 먹고 난 다음에는 차도가 좀 있었나요?' 대답을 위해 고개를 들다 의사의 얼굴 너머 모니터에 떠있는 '객실 예약'이라는 활자를 보았다.
'뭐, 일단 문제는 전형적인 소양인 체질이기 때문에 말이죠...' 한의학은 언제나 낭만[주의]적이다. 양의는 환부, 무언가 어긋나 버린 바로 그 자리에 집중, '치료'란 무언가 '어긋나있음'을 내리누르는 데 주목한다. 날카롭고, 새파랗다. 한방은 우묵하고, 어두운 갈색을 띈다. 한의의 치료는 언제나 오래된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람의 몸에는 기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야기는 어긋난 개체를 자연으로 되돌려보내기 위함이며, 이어지는 치료는 상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주변의 기운을 다독이며 다시 커다란 흐름을 잡아주는데 노력한다. 제한된 선택과 운율의 조화로 재료보다 거대한 세상, 그 조화와 부조화를 그려내는 한의의 치료는, 흡사 하나의 시(詩)를 환자의 몸에 써 내려가는 것과도 같다고 하겠다.
마치 '몇언절구'의 한시처럼 수려한 필치로 써내려간 처방전을 보고 수수한 얼굴의 간호사가 '원장님, 이거 못알아보겠는데요...'라고 외치자, 시인은 조심스러운, 그러나 황급한 얼굴을 하고 뛰어나와 환자가 창작의 비밀을 엿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다가, 이윽고 간호사 마저 못미더운듯 직접 배합을 시작했다. 몇 시간뒤, 알아볼 수 없는 그 단어 단어들이 장기보관용 비닐팩에 담겨 어머니의 협박과 함께 내 손에 쥐어졌다. '반드시 쓰게 먹을 것' - 따위의 복용법이라도 명심해야 할 것 같은. 그렇지 않고서야 나만큼이나 '차도가 없어'보였던 얼굴의 한의, 지금은 어느 '객실'에서 어딘가의 '객'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그가, 모처럼 약재 속에 숨겨둔 운율이 내 몸뚱이에 새겨질 턱이 없을 것 같다.
신비스럽지만, 애잔하고 우울한 한약의 내음이 집안에 퍼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