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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0, 2010

마사키는 이미 오래 전 부터 이 '정열'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숙명적인 병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병은, '참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위해서는, 천천히 나날을 쌓아가며 그 끝에 무언가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순간적 초월, 지속적이지 않은 단 하나의 순수한 앙양, 일격에 생의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뒤 한번 안 돌아볼 치열한 충동의 체험을 갈구했다. 피는, 끓는 물처럼 소용돌이치지 않으면 금세 괴어 색이 변하고 응고하고 만다. 육신은, 고통스럽도록 거세게 움직이지 않으면 곧 뜨뜻미지근한 권태의 나락에 가라않는다.

'정열'은 뜨겁게 녹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한 덩이 유리이다. 그것을 생활에 쓰고자 한다면, 거기에 세상의 범용한 형태를 부여하고, 만만하게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식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식어버린 유리에 남겨진 빛은 가냘프기 짝이 없다. 이윽고 그 빛마저도 잃고 손때에 흐릿해져가서 마침내는 일상읠 너무도 부의미한 순간에 뜻하지 않게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것이다."

- 히라노 게이치로 (1999), 달, p.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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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히라노 게이치로 (문학동네,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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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덞에 일식을 읽고, 이 무슨 미친 소설인가 싶었다. 충동, 충동, 충동뿐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28에 (작년말에 읽었다 -_-v) 이 책을 다시 읽고, 그 충동의 리듬감에 휩쌓여있는 나를 9호선 지하철 안에서 물끄럼히 보게 되었다.

열여덞에 미친 소설이라고, 나랑은 맞지 않아 라고 생각했던 건,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충동 속에서 충분히 허우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인걸까?. 스물여덟의 지금은 그 리듬을 탈줄 알고, 그 뒤에 오는 헛헛함을 알게된걸까? 바야흐로 Yes의 '라운드어밧' 듣던 시절의 나와 샤이니의 '조조'를 흥얼거리면서 하루를 보내는 나와의 그 가까운듯 확연한 거리감으로, 이십대의 마지막 해를 맞는다. 올 한해는, 조금 더 편파적으로 살아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