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26 l 8 1/2 (2010)
June 25, 2010
펠리니의 8 1/2를 보러갔다.
매표소에서: 바로 내 앞에는 오래동안 감지 않은 머리, 때가 가득 찬 형광색의 색, 헐렁한 바지, 조금은 늘어져 삐져나온 셔츠, 누가봐도 노숙자임이 분명한, 따라서 중년인지 노년인지 쉽게 가늠지어지지 않는 한 남자가 줄을 서 있었다.
"팔과 이분의 일 하나 줘."
판매 부스 안의 젊은 청년은 어떤 말을 골라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왜이래. 나 여기 자주 와. 처음도 아니야."
주머니 속에서 만원짜리 한장과 여러장의 오천원 천원이 섞인 돈을 꺼낸다. 그리곤 그는 티켓을 손에 쥐었다. 청년도 별 말이 없었다.
금요일 퇴근시간도 되지 않은 극장안은 의외로 만원이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만원의 좌석은 나의 이동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내 앞에서 표를 산 '그'는 내 옆자리에 앉게될 가능성이 크다. '펠리니'의 '팔과 이분의 일'을 알고 있는 그가 영화 상영 도중 난동이라도 부릴까 하는 걱정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다른 것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냄새는 어떻게 할까?
돌이켜 보면 나는 십년째 이런 것들을 걱정하고 있다. 그 거리감. 책속에서는 '우리'라고 말하고 거리에서는 '그들'이라고 말하는 그런 비겁한 것들. 나는 옆자리에 앉게 될 '그'를 용인할 수 있을까? 극장 직원을 불러 다른 자리로, 아니 자리가 없다면 간의 의자라도 빌려 떨어져야 할까? 아니면 그냥 이 모든 것은 '그'의 탓이 아니기에 라는 논리로, 현실에서의 후각을 무시하고 앉아야 할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또 달리 '동정'이라는 이름으로 행사하게 될 폭력 아닌가? 옆자리 한쌍 앉은 저 흰 원피스의 까투리양은 장끼군에게 혹시 불편을 호소하여, 점잣 시비가 벌어지지나 않을까? 타인의 자유, 빈자의 평등, 사회의 정의, 이익의 분배, 구조 속의 개인, 블라블라블라, 블라블라블라, 그 모든 과도한, 그 모든 개념들. 결국 "패배는 염기훈이 결정적인 찬스를 놓쳐서 그렇다."라는 식의 논리들. 나의 비겁함을 '방까이'해주지 못하는 그런 활자들만이 어지러이 오갔다.
분명히 입장 전에 그가 팜플렛들을 모으러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도, 그러나, 내 옆자리에는 반팔 셔츠의 한 직장인이 앉았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으신 분들이 많아서" 영화는 10분이나 늦게 시작되었다. 극장은 조용했지만. 나는 어떻게 그가 "팔과 이분의 일"을 당당할 정도로 친숙하게 소리낼 수 있었는지, 그리고 혹시 입구에서 그는 입장을 저지당한건 아닌지, 입장을 저지당한 그가 무언가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년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고 "유보"하기 급급한, 아직도 비겁하기 짝이 없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했다.
약 50년전쯤에 만들어진, 저 먼나라 감독의 '지 멋대로' 이야기가 곧 시작되었다. 감독은 비평가를 목메다는데 성공했는데, 불행히도 극장안은 심각한 얼굴의 우리들이 많았다. 충분히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신발을 벗자, 발도 조금 편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