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의

March 4, 2011

간디의 평화주의는 그의 다른 가르침과 어느 정도 분리될 수 있다. 그것의 동기는 종교적이었지만, 그는 그것이 바라는 정치적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분명한 테크닉 또는 방안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발전시킨 '사티아그라하' 정신은 일종의 비폭력 전투행위였다. 달리 말해, 자신도 다치지 않고, 증오를 느끼거나 불러일으키지도 않으면서 적을 무찌르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시민 불복종이나 파업, 기찻길 앞에 드러눕기, 경찰의 돌격에 달아나지도 받아치지도 않고서 버티기 등과 같은 행위를 수반했다. 간디는 '사티아그라하'를 '수동적 저항'이라 번역하는데 반대했다. 구자라트어로 이 단어는 '진리 앞에 단호함'이라는 뜻인 듯하다. 젊은 시절 간디는 보어 전쟁 때 영국 편에서 들것 들어주는 봉사를 했으며, 1914-1918년 전쟁에서도 같은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는 폭력을 완전히 포기한 뒤에도 전쟁에서 대개 어느 쪽의 편을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볼 정도로 정직했다. 그는 어떤 전쟁이든 양쪽 다 똑같으며 누가 이기든 달라질 게 없다고 주장하는 무익하고 불성실한 노선을 취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서구의 평화주의자들 대부분처럼 껄끄러운 질문을 피하기를 전문으로 하지 않았다. 최근에 있었던 전쟁 (2차 대전)에 관하여, 모든 평화주의자들이 답할 의무가 분명히 있는 질문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어떤가? 당신은 그들이 절멸되는 꼴을 볼 각오가 돼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전쟁에 의존하지 않고서 그들을 구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하여 서구의 어느 평화주의자한테서도 정직한 대답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해야겠다. 피해가는 대답만, 대개 "당신은 어떻고?"라는 식의 대답만 잔뜩 들어봤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유연히도 간디가 1938년에 비슷한 질문을 받고서 답변한 내용이 루이스 피셔가 쓴 [간디와 스탈린]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피셔씨에 따르면, 간디의 견해는 독일의 유대인들이 집단 자살을 감행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그랬다면 "온 세계와 독일 국민들을 자극하여 히틀러의 만행에 주목하도록 했을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 그의 그런 태도는 피셔 씨처럼 그를 흠모하는 사람도 동요하게 만들 정도였으나, 간디는 정직했을 뿐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자결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따금 다른 식으로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9788984314238) p. 456-457  

 

우연찮은 계기에 올해 티벳 봉기의 날 슬로건이 "러브 차이나, 러브 티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곳에 가서 글을 읽어보니 슬로건으로 전달하려는 것은 정말로 [오직 평화] - '모두 모두 사랑하자, 서로 싸우면 아픔만 늘어갈 뿐이다.' 라는 식의 메시지. 이로써, 그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제 3자성을 완벽히 드러내었다. 이들 자신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은 특히 공허하다.

폭력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폭력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을 포기한다? 틀린말이다. 이것은 결국 그 폭력을 용인하고, 폭력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감내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제는 모두가 잊어버린 3년전이지만, 2008년에 한국에서 프리 티벳을 외치던 중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발길질을 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미루어, 티벳인들에게 가해지는 발길질들은 과연 어떠한 수준인지 가늠해보자. 그리고 우리가 그 폭력이 지금 눈 앞에서, 가시적으로,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조건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자신을 방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들의 눈을 쏘아보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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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의 오웰의 말처럼, 간디의 비폭력 저항은, 한편 매우 클라우제비츠적이기도 했다.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써의 XX" 클라우제비츠가 이 XX를 전쟁이라는 말로 규정하였고, 간디는 '사티아그라하'라는 것으로 대체했다. 점거나 파업, 무반응은 폭력적이다. 단순히 낭만적이거나 서구&근대 중심의 질서체계에 통렬한 퍅큐를 날리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위한 하나의 수단은 필수불가결적으로 폭력적이다. 이를 벗어나는 예는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슬로건은 무엇인가? 글에는 누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판단마저 빠져 있다. 그저 '도덕적 우월감' 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들의 어떤 부드러운 눈초리, 그 눈초리에 담긴 소위 '대안 문화'에 대한 낭만적 동경을 드러낸다. 이는 결국 그들은 중국인도, 티벳인도 아니라는 점만을 증명할 뿐이다. 

불안하게도 자꾸 망령처럼 광화문 컨테이너 위 스티로폼에 박혀 있던 태극기가 떠오른다. 그 개같은. 더러운. 강박증적 우월주의, 전이된 민족주의. 폭력을 '포기'하는 사람은 남들이 그를 대신에 폭력을 저지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