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우두머리
June 5, 2011
새삼스레 거리의 모습을 둘러보니 이 역시 따분하기 짝이 없었다. 잡다하고 오종종했던 거리가 몰라보게 정비되어 겉모습이 훤하게 바뀌었다. 사람이 모이는 광장도 커다란 상업시설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어 훨씬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 이곳은 가족 나들이와 쇼핑을 하는 곳입니다" "자, 여기는 연인들이 야경을 보는 곳 입니다." "자, 잡지를 보고 상경한 고교생 여러분들은 여기서 쇼핑을 하세요" 등등 구획을 정해 빈틈없이 틀이 꽉 짜인 거리가 되어버렸다. 흥, 번다하고 혼잡하여 엉뚱한 물건이 튀어나오는 것이 거리의 재미가 아니더냐! 그게 문화가 아니냔 말이다!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꾸며진 거리는 가짜란 말이다! 덜 떨어진 것들! 돈 돌려줘... 그래서 거리를 다시 우리 것으로 탈환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의 역습] (9788993111156), p.119
그러고보니 나에게도 일본인 아나키스트 친구가 하나 있었다. 소위 명문대를 나와서 소위 유학파 출신이며, 현재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파트타임으로 알바를 뛰며 본업인 아나키스트 활동-즉, 유유자적하고있는 켄. (아마 켄이치로가 본명이었던 것 같은데) 그가 친절히도 나에게 던져주곤 했던 링크들의 대부분은 ('반, 이거 봐, 정말 재밌어. 너도 좋아할거야!") 위와 같은 목적으로 이루어진 시위들이 대부분이었다. [공간]의 점유, [공간]의 불온화, [공간] 경계의 뒤흔듦 등으로 불리워도 좋을 이런 류의 시위는, 그의 말대로 무척 재미있는 사건들이지만, 나의 배경으로써는 저항보다는 반항, 지나치게 유희에 가까웠으며, '축제가 끝난 뒤, 그럼 무엇이 변하는데? 어딘가 허물어 졌는데?' 라 조금 뒤틀린 시선으로 바라본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오히려 시위만 했다 하면 광화문, 시청앞, 서울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어느 나라의 시위 풍토가 조금 답답하다. 이 나라의 시위는 지나치게 정치적인데, 사실 이로써 더욱더 정치적인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문득 어린시절 '이제 우리에게는 독재자라는, 군부라는 거대악이 없어. 그래서 시위의 시대는 이제 끝나버린 것 같아.'라는 건방진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서 거대악이란 사회의 근본모순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생각이 조금 변했다. 거대악이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모순이어야만 한다. 그것이 반드시 근본일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건 이미 근본의 무엇과는 맞닿아 있을테니까. 그것이 무너지고 흔들리면, 근본의 무엇도 우우웅 울릴테니까. 하지메에겐 일본의 거대 악이란 구획된 공간, 토건의 공간, 소비의 공간일 것이다. 다음과 같이 명쾌하고, 경쾌하다.
"2003년 악의 우두머리 롯폰기 힐스가 오픈했다." (p.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