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과 신자유주의
January 13, 2013
어머니가 자녀와 보내는 시간, 어머니가 자녀에게 하는 배려의 질, 어머니가 자녀에게 보여주는 애정, 자녀의 발달/교육/학업뿐만 아니라 자녀의 신체적 향상에까지 이르는 어머니의 용의주도함, 어머니가 자녀에게 음식을 주는 방식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자녀의 음식상의 관계를 양식화하는 방식, 이 모든 것을 통해 구체적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가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시간 속에서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투자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투자는 도대체 무엇을 구성하게 되는 것일까요? 인적자본, [즉] 자녀의 인적 자본을 구성해줍니다. 그리고 이 자본이 소득을 산출해준다는 것이죠. 이 소득은 장차 무엇이 될까요?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그의 임금이 됩니다. 그렇다면 투자한 어머니에게 그것은 어떤 소득일까요?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하면 그것은 심리적 소득입니다. 자녀를 보살피려 하는 것, 그리고 그 보살핌이 실제로 성공하는 것을 봄으로써 부모는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투자, 자본의 비용, 투자된 자본의 경제적 이익과 심리적 이익이라는 견지에서 어머니와 자녀 사이의 대단히 넓은 의미에서의 육성적 관계 혹은 교육적 관계라 '부를' 수 있는 관계를 분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출생률의 문제가 다뤄집니다. 부유한 가정이 가난한 가정보다 혹은 더 부유한 가정이 더 가난한 가정보다 명백히 맬서스적 특징을 갖는다는 문제에 대해, 즉 소득이 커질수록 자녀의 수가 적어진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법칙에 대해 신자유주의자들은 이것을 재검토해 분석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확실히 역설적인데, 왜냐하면 엄밀하게 맬서스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더 큰 소득은 더 많은 자녀를 허용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이에 대해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결국, 부유한 사람들이 행하는 맬서스적 실천은 경제적 역설인 것일까? 그것은 도덕, 윤리, 교양 등 경제적이지 않은 요소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역시 경제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오냐하면 고소득을 얻는 사람들은 그 소득의 크기가 증명하고 있는 바, 큰 인적자본을 보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문제는 자신들의 자녀에게 고전적 의미의 유산을 전달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전통적 유산 상속과는 전혀 다른 양태로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다른 요소를 전달하는 것, 즉 인적자본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인적자본의 전달과 육성. 여기에는 이미 봤던 대로 부모가 할애하는 시간, 교육상의 뒷바라지등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부유한 가정, 즉 소득이 높은 가정, 다시 말해 큰 인적자본을 갖는 요소들로 구성된 가족은 적어도 그것과 같은 정도의 인적자본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려는 직접적이고 합리적인 경제계획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모에 의한 재정적 투자, 더 나아가서는 시간적 투자 등 일련의 투자가 포함됩니다. 그런데 이런 추자는 자녀가 많은 가정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에 따르면 부모가 가지고 있는 [것과] 적어도 동일한 만큼의 인적자본을 자녀들에게 전달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가난한 가족보다도 부유한 가족이 자녀의 수를 제한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9788994769097), pp.339-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