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에 각인된, 저물어가는 저녁빛
March 19, 2017
벨은 몇 년 전 오래된 서류들을 뒤지다가 우연히 이브레아 풍경이라는 제목이 붙은 동판화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엄청난 실망감을 맛보았다고 썻다. 자신의 기억속에 각인된, 저물어가는 저녁빛 속에 고즈넉이 잠긴 도시 이브레아의 풍경이 다름아닌 그 그림 속 도시 풍경과 판박이처럼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벨은 여행지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을 모사한 그림들을 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 그림들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인상과 기억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릴 뿐 아니라, 심지어 완전히 파괴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가 드레스덴에서 보았던 , 그는 아무리 애써도 그 그림을 뮐러 상점에서 파는 기념품 그림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기억해 낼 수 없었다고 한다.
—W. G. 제발트,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 p.13